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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플 수도 있죠. 그렇죠. 차이콥스키 '비창'
    음악 이야기 2022. 8. 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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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악은...

    비 오기 전 아주 무겁고 습도 높은

    구름이 땅으로 툭 떨어질 것만 같은

    회색 날씨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다 듣고 나면 무거운 기분이 풀리는 게

    참 놀라운 음악이죠. 


     

    친한 친구 한 명이 요즈음 많이 슬프다. 매일매일 눈물의 연속이다. 너무 울어서 눈이 아프단다. 눈이 건조하고 실핏줄이 터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지 신기하게 눈물이 계속 난다고 한다. 학창시절 언어 영역을 공부할 때 어느 지문에 '단장의 슬픔'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그에 딸린 문제는 '단장' 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맞히는 것. 답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 이었다. 슬픔은 아프고 또 괴롭다.
      

    단장의 슬픔이 느껴질 만한 일들이 일생에 누군들 없겠냐만 클래식 음악을 작곡한 음악가들을 면면이 살펴보면 아픔이 없는 작곡가가 흔치 않다. 차이콥스키의 경우 성 정체성의 혼란과 물심양면으로 열렬했던 후원자와의 단절이 그에게 큰 아픔을 안겨주었다. 그의 작품 <비창> 을 들어보면 느낄 수 있다. 그 슬픔의 깊이와 색깔을.

     

    Tchaikovsky. Symphony No.6 In B Minor Op.74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나단조 작품번호 74 <비창>

     

    https://www.youtube.com/watch?v=SVnF3x44rvU 

     

    I. Adagio-Allegro Non Troppo

    날씨로 따지면 곧 비가 쏟아져 내릴 것처럼 무거운 먹구름이 그득한 우중충한 분위로 시작된다. 오프닝이 너무 우울하고 비극적이어서 깜짝 놀랄 정도이다. 1악장에서는 크게 두 개의 분위기가 번갈아가면서 흐름을 만든다. 하나는 앞서 말한 비극적인 무거운 슬픔이고 다른 하나는 암울한 와중에 너무 감미로워서 슬픈 서정적인 분위기이다.
      

    한창 비극이 닥쳐올 때는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슬플 시간도 없을 정도로 닥친 상황이 벅차다. 그러다가 잠시 숨을 고를 만 할 때 슬픔이 밀려오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 당황스러워지는 그런 순간이 온다. 1악장이 그렇다. 특히 현악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도 같으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처럼 하강하는 선율이 너무 아름답게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II. Allegro Con Grazia

    멜로디에 편안하면서도 흥이 나는 리듬이 묻어 있다.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다. 먹구름이 서서히 물러가려는 조짐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공기는 무겁다. 차분하면서도 즐겁다. 1악장에서 온갖 어둠의 감정을 쏟아내고 난 후 평온함이 찾아온 느낌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마구마구 쏟아낸 후 오는 약간의 후련함이랄까. 현악이 주 멜로디를 담당하며 끌어가면서도 관악과 호흡을 주고받는 모습이 조화롭다. 너무 들뜨지 않는 선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전달해주는 악장이다. 
      

    III. Allegro Molto Vivace

    현악기들은 활을 짧게 짧게 써서 생동감 있게 연주가 되고 관악 또한 무겁지 않게 툭 툭 가벼운 호흡으로 전체 음악이 진행된다. 멜로디가 매우 탄력적으로 경쾌하다. 현악과 관악이 번갈아가며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즐겁게 들린다.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가 고조된다. 경쾌한 주멜로디를 기본으로 관악기가 그 웅장함을 더해준다. 적절하게 쓰이는 타악은 분위기를 더 고조시켜 준다. 마지막은 음계를 층층이 한음씩 내려오면서 끝나는데 하강하는 음인데도 불구하고 느낌은 상승하는 느낌을 준다. 가볍게 시작해서 서서히 고조되는 구조이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반복과 점층-와 <피아노협주곡 G장조 1악장>-하강 스케일의 엔딩- 왠지 떠오르는 3악장이다.)
      

    IV. Finale. Adagio Lamentoso-Andante

    주루루룩 미끄러진다. 빗줄기가 뭉개져 창문으로 흘러내리듯이. 빗물 때문에 시야가 답답해져 창문 밖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썩 개운한 느낌은 아니지만 슬픔이 표현된다. 위에서 아래로 주루루룩. 중간에 한 번 분위기가 바뀌면서 경건하면서도 장엄하게 이어진다. 주된 정서는 변하지 않는다. 꽤 우울하고 꽤 비참하다. 그러면서 끝난다. 
      

    이 음악은 그렇다. 슬픔의 맨 밑바닥을 보고 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 밑바닥을 싹싹 긁어서 표현해 낸 작품이다. 우울함과 그 비참함을 너무 잘 보여주기 때문에 너무 비통하면서 안타까운 작품, 또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음악이 될 수 있는 작품.
      

    차이콥스키의 삶의 고통과 애환이 그의 ‘비창’ 으로 단단하게 응축되어 탄생한 <비창>이다. 슬픔과 우울의 밑바닥을 기고 있을 때 참 필요한 음악이다. 듣는 이의 상태를 다 알고 어루만져준다.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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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는곰 문화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