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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여자, 이별하는 중에. 영화 ‘휴먼 보이스’
    영화 후기 2024. 8. 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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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영화. 1인 배우의 무대
    장 콕토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풀어 내다

    휴먼 보이스(2020)_페드로 알모도바르



    새빨간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하는 한 여성. 배경은 어두운 무대 세트 그리고 우울하고 불안하면서도 의심스럽게 차분한 음악.

    영화는 프랑스 작가 장 콕토(1889-1963)의 희곡을 ‘자유롭게 변용’했다고 밝히며 시작합니다. 감독은 스페인 출신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연은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이별 중인 여성의 심리’를 두고 모였습니다.



    일단 영화의 분위기가 감각을 사로잡습니다. 차분하고 불안한 가운데 한 여자가 있고, 시각적인 요소들 하나하나가 강렬한 색감과 의도된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장이 뚫린 무대 세트로, 여자의 동선과 공간의 구조가 보이도록 촬영되었습니다.

    모든 게 현대적으로 보입니다. 여자 또한 빨강, 파랑, 검정 등의 셋업 의상을 입고, 통화를 할 때는 에어팟을 낍니다. 그런데 그 심리가 어쩐지 그와 대비되어 묘합니다.



    4년 동안 여자는 금지된 사랑을 했고, 며칠째 그 남자를 못 보고 있어 너무 우울하고 화가 나는데, 이들은 사실 지금 헤어지는 중이고, 이에 이별을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게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 혼자 파괴적인 상상을 하고 그걸 어느 정도 실행에 옮기는, 그러면서 그 남자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연락이 왔을 때 매우 반가워하면서도 자신의 복합적인 진짜 심정을 숨기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하는 모습에 감춰진 본모습 때문에, 홀로 감정적으로 발버둥치는 여자.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별 수 없는 인간의 심리, 심리의 상황을 표현하는 틸다 스윈튼의 대사 안에, 그 연기 안에, 굉장히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인물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인물의 조용한 발악일 수도 있겠고, 이별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직전 스스로 행하는 어떤 무의식적인 의식 행위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연출과 연기의 완벽한 합
    고요하고 강렬하게.

    마치 음악이 진행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를 받쳐 주고 끌어가는 가운데, 여자는 독백 연기를 이어 나갑니다. 남자와 통화를 하고 있지만 모놀로그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여자가 하는 행동은 과격합니다. 색색깔의 약을 먹기도 하고 도끼를 들기도 하고 급기야는 불까지 지릅니다. 처음에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불안한 심리를 보였지만 점차 그 불안은 분노에게 먹히면서 정말로 파괴적인 행동으로 -그래도 남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발현되고, 그제서야 의식을 모두 치른 듯이 밖으로 나갑니다. 세트 안에 고립되어 있던 모습 즉, 남자를 잊지 못하는 심리 안에 갇혀 있던 자기자신을 떨쳐 냅니다.



    고요하지만 강렬한 영화입니다. 남자를 기다리며 홀로 힘들어하는 여자라는, 그 설정과 정서가 ‘장 콕토’의 시대만큼 옛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는 그것을 인간 본연의 심리로, 현대적이고 미술적으로, 해소하고 해결했습니다. 영화는 삼십 분이 채 안 되지만, 감독과 배우의 심도 있는 인터뷰가 바로 덧붙여져 OTT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tv.kakao.com/v/420967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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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는곰 문화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