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겪은 듯이 세밀하고 섬세한 어느 가족의 사연 배경과 어우러지는, 세 자매 그리고 엄마의 일상 중에.
교토에서 온 편지(2023)_김민주
영화는 부산을 배경으로, 특히 과거와 그 모습이 달라진 영도 지역에 사는 한 가족을 비춥니다. 엄마와 딸 세 자매인데, 첫째 혜진(한채아), 둘째 혜영(한선화), 셋째 혜주(송지현) 그리고 엄마 화자(차미경)입니다. 혜영이 서울에서 일하다가 본가로 내려온 시점부터 이들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혜영이 작가로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 혜진은 부산에서 일을 하고, 혜주는 아직 학생으로, 춤추는 것을 좋아해 몰래 춤을 배우러 다니고 있는 상황. 그리고 화자는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는 봉사활동을 하며 삽니다. 혜진과 혜주, 화자는 오래 전부터 쭉 그 모습이었을 것 같은 집에서 같이 사는데, 그런 느낌이 나는 이유는, 화자는 무언가 버리는 걸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안에 물건들이 참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때문에 오래되고 정스러운 분위기가 나기는 합니다.
화자가 무언가 버리는 걸 잘 못하는 이유. 그건, 무언가를 좋아하면 만지고 싶은데, 추억은 만질 수 없기 때문이라나. 하지만 오랜만에 집에 내려와서 본 혜영의 눈에 엄마는, 그리고 가족들은, 자기 맘 같지 않아서 답답하기 일쑤입니다. 영화는 특히 타지에 살다가 집에 내려와 본 혜영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 갑니다.
분위기가 정스럽습니다. 따스하기만 한 게 아니라, 어느 가족의 분위기를 현실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 자매도 엄마도, 정말 한 가족처럼 결이 비슷합니다. 돈 때문에 일 때문에 꿈 때문에 아니면 남자 때문에,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면서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면서 사소한 것들을 통해 정을 나누기도, 싸우지 않아도 될 것들 때문에 싸우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영화는 이때, ‘교토에서 온 편지’를 화자의 사연과 단단히 묶어 두어, 화자의 현재 상황과 과거를 이으면서 동시에 모녀관계 등 가족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화자를 중심으로 펼쳐 봅니다. 실은 화자가 일본 출신인 것으로 영화는 강력한 설정을 해 두었고, 더불어 초기 치매 증상이 시작된 것으로 설정하면서, 세 자매는 모르는, 화자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흥미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산과 교토를 배경으로 하는 사실감 가족 사연을 세밀하게 그리다
영화는 마치 실화인 것처럼 또는 자전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아주 세밀하게 한 가족을 들여다봅니다. 영도라는 지역, 교토라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을 특정해서 그 지역 자체를 언급하면서 인물의 사연을 만들어 둔 것도 그렇고, 영도는 물론 교토의 특정 장소까지 장면으로 담으면서, 정말로 인물들이 그 지역에 사는, 그 지역과 연관 있는 것처럼 다가오도록 했습니다.
세 자매의 이야기 역시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어떤 이들의 모습과 너무나 같게 보이는데, 각자 자신들의 진로와 사랑 그리고 엄마에 대한 걱정까지, 이런 고민,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처럼 생각되는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담았습니다. 너무 극적이지 않은 이야기에서 오는 사실감이 있습니다. 한 가족의 삶,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정밀하게 그린 것입니다.
몰랐던 사연이 드러나는 그 과정과 그 지점들 또한 자연스럽게 이 영화의 포인트가 되어 줍니다. ‘교토에서 온 편지’에 대한 궁금증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 내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뜬금없이 웬 편지인지, 웬 일본어 편지인지, 웬 교토인지 싶게, 영화는 인물 화자에게 많은 궁금한 점들을 숨겨 놓고, 이들 가족의 사연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화자의 과거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천천히, 서정적으로 펼쳐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