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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이런, 이야기의 이야기. 영화 ‘블랙 버터플라이’영화 후기 2024. 9. 3. 09:51반응형SMALL
시나리오 안의 시나리오들
‘이야기’가 지배하는 사건, 인물 그리고 이 영화
블랙 버터플라이(2017)_브라이언 굿맨
작가 폴(안토니오 반데라스)이 글을 쓰면서, 허허벌판 시골 지역에 은둔하다시피 혼자 살고 있습니다. 폴이 사는 지역은 지금, ‘또 다시’ 여성 대상 살인 사건이 발생한 상황. 이를 기본 배경으로, 영화는 폴의 일상적인 모습을 비춥니다. 그러다 폴은 우연히 한 남자, 잭(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도움을 받게 되어, 떠돌이로 보이는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머무르도록 합니다.
영화는 폴과 잭의 묘한 기운을 주요 재료 삼아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일단 영화는, 보는 관객도 폴의 시선으로 따라가도록, 폴이 잭을 보는 시선과 기분을 같이 따라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잭이 수상하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판단을 하면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판단하기에 충분하도록, 영화는 잭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그가 만드는 상황들을 제공합니다.
그에 따라 어느 순간 확신하게 됩니다. 아, 잭이 지역 살인 사건의 범인이구나. 영화는 그렇게 믿도록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살인자에게서 살아 남아야 하는 무고한 작가 인물로서의 폴을 그립니다.
이때 폴이 작가라는 것이, 점점 주효해집니다. 사실 초반부에는 폴의 직업이 작가로 설정된 이유가 의아했습니다. 그의 직업적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 대비 그와 관련된 실질적인 스토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잭은 폴이 작가라는 것을 알고는, 그걸 이용해 폴을 돕거나 자극하는 등 묘한 대화와 상황들을 주도하는데, 그러한 부분이 처음에는 단지 무언가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한 영화적 설정인 듯이 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이 영화가 왜 그러한 설정, 대화, 상황들을 활용했고, 왜 그렇게 ‘이야기’를 소재로 이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는지.
이야기의 속성을 재료로, 인물도 관객도 속이다
이야기의 구조를 활용해,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표현
영화는 인물들을 통해, 서로를 속이고 관객을 속이도록 했습니다. 잭의 경우 그 캐릭터의 의도로 폴을 속이고, 폴의 경우 연출적인 의도로 자연스럽게 관객이 속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아, 폴을 연기한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속고 말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만큼 인물 캐릭터 표현이 묵직하고, 영화는 그 묵직함을 기꺼이 묵직하게 활용합니다.
특히 폴과 잭은 각자 자신들의 ‘시나리오’로 대결합니다. 영화는 이 ‘이야기’의 속성을 십분 활용하는 내용으로, 그것을 인물의 대결 구도로 삼으면서, 잭의 대사 중 하나인 ‘단지 이야기일 뿐’이라는 그 ‘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한바탕 헤집고 또 뒤집고 뒤집습니다.
이때 ‘시나리오’라는 건, 진실이 아닌 허구라는 걸 말하는데, 영화는 이 허구의 것들을 현실에 적용함으로써 내용을 꾸며 냈고, 그 내용을, ‘이야기’의 ‘형식’ 즉, 몇 가지 ‘스킬’을 활용하면서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흥미진진한 스릴러 장르 또는 범죄 드라마로 그칠 수 있었던 영화가, 내용상의 반전 그리고 이야기 구성의 가장 기초적인 스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액자 형식을 통해 한 번 더 시선을 모으고 집중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승리한 영화입니다. 그것이 영화 안의 인물 즉, 폴이 가진, 폴이 꾸민 이야기이건, 아니면 잭이 가진, 잭이 꾸민 이야기이건, 아니면 이 영화 자체가 내용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의도적인 스킬로 꾸며 낸 이야기이건, 영화는 이야기의 속성과 특징을 활용했습니다.
맨 마지막 장면까지도, 영화는 ‘이야기’ 자체를 주제로 삼는 선택을 하면서, 결국엔 어떤 결말이 나든지 간에 ‘이야기’가 이기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https://youtu.be/LaOymYQ3nMM?si=kHdlpztH-EXDOjDP'영화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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