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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로 치유. 영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영화 후기 2025. 3. 17. 11:42반응형SMALL
우울하지만 강렬한, 청춘의 단면
주체 못 할 ‘나 자신’을 살아내는 모습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사랑(2018)_세키네 코사이
우울하고 무기력한 데다 짜증도 많고 잠도 많은, 지금은 우울증 국면에 있는, 조울증을 겪는 인물 야스코(슈리)는 남자친구 츠나키(스다 마사키)와 같이 사는 중입니다. 예민하고 감정이 복잡한 야스코와 달리 츠나키는 무심함이 한결같습니다. 직장에서 정말 싫은 일을 하면서도 내색 않고 무심하게 야스코의 밥을 챙기는 모습입니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야스코입니다. 야스코의 우울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가감 없이 비추면서, 우울증 때문에 힘든 사람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 줍니다. 제 힘으로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그런 마음이 드디어 들었더라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힘겹게 홀로, 내적으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표현되었습니다.
하지만 야스코가 본인만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츠나키에게 신경질적인 말을 하며 괴롭게 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에 츠나키가 동요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너무하다 싶지만, 영화는 결국 이들이 함께할 수밖에 없는, 내적으로 끈끈히 다져진 관계와 역사를 보여 주며, ‘이해’를 치유의 근원으로 나타냅니다.
야스코도 츠나키도 모두 얼굴이 잘 안 보일 정도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게 마치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이 만든 세상에 살고 싶은 듯한, 혹은 이미 심적으로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들의 내면은 그만큼 가두어져 있고, 그것이 이들의 힘겨운 마음과 현실을 대변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현실, 함께
나도 알기 힘든 나를, 서로 이해하도록
다행히 야스코는 거의 타의에 의해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츠나키의 전 연인이 야스코를 사회로 이끌어 낸 셈인데, 그렇게 야스코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점차 자기자신을 극복하게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식당 사람들의 호의도 큰 몫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야스코는 또 다시 자신의 우울감에 잠식당하고 맙니다.
츠나키 역시 회사에서, 처음부터도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면서 괴로움을 겪던 것이 임계점을 넘게 되고, 그것이 야스코의 고비와 맞물려서 후반부 감정적 응어리가 풀립니다. 물론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니고 다만 ‘소통’을 통해 그것이 밖으로 나오면서 ‘이해’의 영역에서 해결됩니다.
한편 이 영화가 포인트로 잡은 두 개의 이미지가 인상적입니다. 영화 도입부에 소개되었던, 정전이 되면 나체로 춤을 추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야스코의 엄마였다는 대화가, 후반부 야스코를 통해 실현되고, 츠나키가 야스코에게서 받은 인상이자 자신을 그녀에게 투영하게 된, 힘차게 달려가는 ‘푸른색’ 치마가,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가 되어 줍니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우울증에 걸린 여성의 일상을 고증하고 싶은 건가, 싶을 정도로 거기에 주목하는 듯 보이다가, 아, 다행히도 이 여성이 홀로 치열하게 싸우며 극복을 위해 달려가는 여정을 보여 주는구나, 싶다가, 보다 더 큰 그림으로 인물 전체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힘겨운 청춘 사회의 현실까지, 그것도 자신도 잘 모르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장면으로 그리면서 여운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https://youtu.be/vfpH6NZ4UmM?si=H4iMygfKoljzl_gV'영화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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