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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무를 수가 없어.. 영화 '흔적 없는 삶'
    영화 후기 2023. 10. 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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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흔 때문에 숨어야만, 떠나야만 하는 삶
    어느 부녀가 살아가는 이야기

    흔적 없는 삶(2017)_데브라 그래닉

     


    영화는 윌(벤 포스터)와 톰(토마신 맥켄지)을 담았습니다. 두 사람은 부녀지간으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톰(토마신 맥켄지),윌(벤 포스터)

     

    낯선 소리라도 들리면 행여나 누구에게 들킬까 싶어 바로 숨어버리는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윌은 전쟁을 겪은 군인이었고 그로 인해 후유증이 남게 된 것입니다. 잠시 비치는 신문 기사에는, 군인들의 자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영화는 그것을 크게 부각시키지는 않습니다. 그저 숨고, 피하고, 떠나는 윌의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톰 역시 윌과 같이 숨고, 피하고, 떠납니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마치 세상에 둘만 있는 듯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새로운 거처를 얻게 됩니다. 

     


    톰은 안락함을 느끼지만 윌은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윌의 감정이 드라마틱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한곳에 머무는 게 불편한 건지 사람들과 있는 게 불편한 건지 그 이유를 생각할 것도 없이, 다만 전쟁이 남긴 상흔 때문에 ‘떠나야만’ 사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톰은 그렇지 않습니다. 머무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윌과 함께 조용히, 그곳에 머물렀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정리를 한 후 떠납니다. 

     


    “우리 생각만은 우리의 것”
    “머무를 수 있었다면 머물렀을 거라는 걸 안다는 것”

     

    두 사람은 체력적으로 더 버티기 힘들게 되고 급기야 윌이 쓰러져 한 산골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윌은 몸이 채 낫기도 전에 떠나고자 하는데, 반대로 톰은 그곳에서 삶의 전환을 맞게 됩니다.

     


    톰은 그곳에 머무르기로 스스로 선택합니다. 마을 사람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받고 또 주고, 작은 벌들과 생명력을 주고받고 배우는 상황들을 통해 성장한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건, 톰이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그 과정 속 깨달음이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매우 세밀하고 예민합니다. 단편적으로 보면, 톰이 윌의 사연을 알고 나서 하는 생각 그리고 사람과 자연과 깊이 나눈 교감, 이 두 가지가 톰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톰은 윌이 떠날 수밖에 없음을 깊이 이해하면서 윌과 이별을 하는데, 그 모습에서 보다 깊은 애정과 존중이 드러납니다. 

    톰은 떠나는 윌에게 ‘머무를 수 있었다면 머물렀을 거라는 걸’ ‘안다’고 말합니다. 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또한 윌은 톰에게 ‘우리 생각만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이 윌을 가장 잘 나타냅니다. 생각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떠나야 하는,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한 인물의 고통이 담겨 있던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f00RzVENT8

     

    인물과 상황 모두 매우 잔잔하고 푸르른 영화입니다. 아주 차분하고 조용하게,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의 고요한 삶이 담긴 영화 ‘흔적 없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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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여는곰 문화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