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하신다면. 영화 ‘책 종이 가위’
초등학교 때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본 미술 교과서에는
가위질 하는 법부터 나와 있다고.
사실 확인은 못 했지만
그게 어린 시절 좀 충격이었는지
여태 기억이 나네요.
일본의 책 표지 디자이너
기쿠치 노부요시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일본의 북 디자이너 기쿠치 노부요시
그의 일과 책, 작업방식, 생각을 담다
책 종이 가위(2019)_히로세 나나코
이 영화는 수십 년간, 만 오천여 권의 책 표지를 디자인해온 일본의 북 디자이너 기쿠치 노부요시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담으면서 천천히 그의 삶을 따라가본다.
기쿠치 노부요시는 종이를 구기고 오리고 자르고 붙이면서, 표지를 디자인한다. 알맞은 폰트를 고르고 그것을 표현하고, 종이의 색감과 질감을 작가의 글에 맞게 표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에도, 그는 오래 전부터 해오던 방식 그대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뚜렷이 보인다. 자신이 디자인을 맡은 책에 대해 해석한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의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일에 대한 열정 그 이상의 장인정신이 엿보인다.
그를 북 디자인의 길로 들어서게 한 운명의 책에 대한 이야기도 역시 언급된다. 오랜 세월이 흘러 기쿠치 노부요시는, 그 운명의 책 작가의 일본판 책 표지를 손수 디자인하게 된다.
영화는, 기쿠치 노부요시가 그 디자인을 하면서 어렵게 찾아낸 특정 색감이 표현된 종이를 손에 받아들고 만면에 미소를 띄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 그 종이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짓는 환한 웃음이 매우 인상적이다. 일부러는 절대 지을 수 없는 표정에서, 일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8AnfUMGDu0
1mm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북 디자인의 세계. 누군가는 뭘 저렇게까지 세세하게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일의 속성이 본래 그런 면이 있다. 아주 작은 차이가 느낌을 매우 다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책을 디자인하고 있음에도 매번 그렇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일 터다. 영화는 그 지점을 화면으로 담아내 보여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장인정신과 더불어 책 산업적 고민까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여기서 책은 작가의 ‘글’이 아닌, 손에 쥘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책’을 말한다. 물론 글과 책이 너무 긴밀하기 때문에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작가의 글이, 글을 잘 나타내는 표지를 달고 서점에 진열되기까지의 그 과정을, 영화는 기쿠치 노부요시를 통해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기쿠치 노부요시는 직업적 커리어의 정점이자 끝자락에 있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런 그의 생각도 솔직하게 담았다. 사람들이 책이라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대할지, 그러니까 글로 대할지 책으로 대할지의 문제에서부터, 산업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서점은 존재한다는 말, 그리고 이후 세대 디자이너에 대한 생각까지, 영화는 그의 생각을 짧지만 진솔하게 담아냈다.
영화는 북 디자인 작업 외에도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밀착해서 보여준다. 책이 출판되기까지, 작가 이외 책 자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하겠다.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노장 북 디자이너의 이야기, 영화 ‘책 종이 가위’는 9월 13일에 개봉한다.
(끝)